2월의 과학사: 의심하고 증명하라!

기자회견 장의 모습(이미지: 구글)

 2016년 2월 11일 워싱턴 D.C. 전 세계에 동시 중계되는 기자회견이 하나 열렸다. 기자회견의 주제는 ‘중력파 검출’. 무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했던 중력파를 최초로 직접 검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록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상황이었지만 전 세계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 뿐 아니라 온 세계가 중력파 발견을 헤드라인으로 띄우고 있었고 ‘천문학 역사에 남을 사건’, ‘노벨상은 당연하다.’라는 등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발표 날은 2월 11일이지만 실제 발견된 날은 그보다 훨씬 전인 2015년 9월 14일이라는 것이다. 아주 대단한 업적이라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약 여섯 달을 기다려서야 이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일까?

웨버와 검출기의 모습. 웨버는 중력파 발견을 보지 못하고 2000년에 사망하였다.(이미지: 구글)

 
 중력파 검출을 위한 노력의 역사는 아주 긴 가시밭길이었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시공간이 변형되어 생기는 중력파를 예견한 이래 이론상 검출이 가능한지, 과연 어떤 방식을 써야 하는지 연구하는 것만 40여 년이 흘러갔다. 최초 중력파 검출을 시도한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조셉 웨버였다. 그는 지름 1m짜리 커다란 원통 안에 측정 장치를 설치한다. 중력파로 인해 진동이 생기면 그 진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류를 측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969년, 웨버는 중력파를 발견했다는 발표를 한다. 10여 년이 넘는 논쟁 끝에 웨버의 발견은 중력파가 아니라 잡음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론으로만 활발하던 중력파 검증 시도가 ‘직접 측정’ 도전으로 넘어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림3. 핸포드에 위치한 LIGO(위)와 그림4. 리빙스턴에 위치한 LIGO(아래)의 모습(이미지: LIGO 홈페이지))

 
 이렇게 실패만 거듭하던 실린더 형태의 검출기를 뒤로하고 빛을 이용한 간섭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992년에 2억 천만 달러가 넘어가는 투자금으로 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연구소)의 설치가 시작된다. 4km짜리 커다란 터널을 지나가는 빛이 서로 만나면서 상쇄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력파가 영향을 주면 시공간이 변형되면서 빛의 상쇄가 달라진다. 이론은 완벽하다. 검출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이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2002년부터 본격 가동을 시작한 LIGO는 기대와는 달리 중력파 신호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연구 시작 때부터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는 분야에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자하는 것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2010년 LIGO 장비의 개선이 시작되었음에도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여전히 끊이지 않았으니 중력파 발견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일 뿐이었다.

 이처럼 LIGO는 사람들의 믿음에 보답해야 했고 의심을 불식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이 와중에 2015년 9월 14일에 의문의 파동이 감지된 것이다. 감지된 파동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질량을 가진 천체 2개가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처럼 보였다. 미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핸퍼드 검출기와 남동쪽에 있는 루이지애나 검출기에서 모두 같은 흔적이 발견되었고 그 형태 역시 거의 일치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위치의 검출기에서 비슷한 파형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잡음일 확률이 적다는 뜻이 된다. 새로운 발견으로 흥분해야 할 시기에 LIGO 과학자들이 서로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이거 누가 가짜 신호 넣은 것 아니야?’ 였다.

중력파 장면의 상상도. 물결처럼 퍼지는 모습이 보인다.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일부 질량이 중력파로 퍼져나간다.(이미지: NASA)

 
 2007년과 2010년. LIGO는 정체불명의 신호를 기록한 전력이 있었다. 이를 중력파 신호로 파악한 연구진은 신호를 분석하여 논문 작성까지 들어갔으나 이것은 중력파가 아니었다. 일부 고위 연구진에 의해 몰래 들어간 가짜 신호였던 것이다. 연구진의 분석 능력과 경험을 위해 진행된 이 암맹 주입(blind injection) 사건 때문에 2015년에도 이러한 의심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범인 찾기는 몇 가지 상황 덕분에 종식되었다. 먼저 2015년 9월 당시 LIGO는 시험가동 중이었다.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정식 가동을 하기 약 일주일 전이었고 14일 당시에는 8차 시험가동이 진행 중이었다. 마찬가지로 유럽에 설치된 VIRGO 검출기 역시 작동 중이 아닌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암맹 주입 훈련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무의미한 일이었다. ( 신호 분석으로 인해 정규 가동이 늦어지는 것 자체가 손해가 오기 때문이다. )

 시작부터 의심의 연속이었다. 암맹 주입이 넘어간 이후에도 신호가 정말 블랙홀 중력파인지 1000여 명의 연구진의 토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왜 현재까지 신호가 이것 하나밖에 없는지 ( 다행히도 2월 논문 발표 전인 12월에 또 다른 중력파 의심 신호가 발견된다. ), 다른 과학자들에게 통계적으로 신뢰성을 얻을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이 계속되었다. 심지어 논문에서 중력파 최초 ‘직접’ 검출인지 아닌지 용어 선택까지도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역사적인 발견을 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추후 어떠한 문제점이라도 발견된다면 더 끔찍한 일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2014년 바이셉2(BICEP2) 연구에서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우주 먼지로 인한 현상임이 밝혀지는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더욱 조심스러웠다.

남극에 있는 바이셉2의 모습(이미지:구글)

 
 이런 과학자들의 조심스러움은 9월 발견을 2월에 발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실제 분석이라는 것이 컴퓨터 버튼 몇 번 누르면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수많은 연관 과학자들이 중력파를 발견했냐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고 (심지어 2월 발표 때에도 또 다른 신호를 포착했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내용을 비밀에 부치려 했던 이유에는 과학자들의 신중함이 포함되어 있다. 과학 연구를 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당연히 전문가의 영역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대중이 없다면 과학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아무런 선례가 없던 중력파의 발견에는 다른 과학자들과 대중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더 확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노력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2017년에 중력파 관측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LIGO 연구팀의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킵손의 모습. LIGO 설립 때부터 큰 역할을 해냈다.(이미지: 구글)

 
 2016년 이후에도 계속된 중력파 관측은 현재 50개가 넘어가는 결과물을 냈다. ( 블랙홀 충돌뿐 아니라 중성자별 충돌까지 발견해냈다. ) 첫 발견 때만큼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중력파 천문학, 다중신호 천문학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혹시 아는가?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커다란 발견이 있었고 현재 수많은 과학자의 의심 속에 형체를 갖춰나가고 있을지. ‘의심하고 증명하라.’ 과학은 그렇게 단단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1.중력파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시대를 맞이하여-김정리,조희석,이형원,이창환,이현규,강궁원
2.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116.061102 (발견 논문)
3.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remembering-joseph-weber-controversial-pioneer-gravitational-waves
4.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42
5. https://weekly.donga.com/List/3/08/11/2195472/1
6. https://www.ligo.org/news/blind-injection.php
7. https://science.ytn.co.kr/program/program_view.php?s_mcd=0082&s_hcd=&key=201604051557056460
8.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015.16830
9. 중력의 키스 : 해리 콜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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